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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리터러시란 생각과 삶의 방식입니다. 이 책에서는 리터러시를 경험한, 새롭게 읽는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글을 읽으면 우리의 눈과 뇌, 몸과 마음은 각자의 틀 안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읽는 사람은 남이 가공하거나 사회가 주입한 생각의 틀에 자신을 가두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읽는 인간은 리터러시를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생각의 틀을 갖추어 나갑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얻은 자신의 틀이 어떤 모양일지 확인하고 또 수정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모양으로 자신의 읽기를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읽고 쓰고 생각하면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와 일을 하며 위안과 치유를 얻기에, 리터러시는 개인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서 꼭 쓸 줄 알아야 하는 배움의 도구입니다. 하지만 리터러시의 경험은 단지 개인사로만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읽고 생각하고 나누면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협력적으로 파악하고 변화의 의제를 설정하며 대안적 미래를 토론하는 일에 부지런합니다. 초반부에는 리터러시에 대해 얘기하고 본론에선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제대로 읽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은 리터러시에 대한 저의 생각을 얘기하겠습니다.

◈문해력? 이제는 리터러시

파울로 프레이리라는 브라질 교육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상에서 글을 읽을 때 특히 정신의 관료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신의 관료화란 행정기관의 공무원들이 업무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나머지 마치 모든 일이 원래 그렇게 되기로 했던 것인 양 타성에 젖어 서류를 처리하는 것과 비슷한, 경직된 마음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즉, 눈앞에 보이는 것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구태의연한 독자가 되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방식으로 읽는 것, 영혼과 의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읽는 것에 익숙해지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정신이 굳어 있는 관료적 읽기에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스며들 틈이 없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유연성이 발휘될 여유도 없습니다. 리터러시는 글자 읽기에서 출발하여 세상 읽기로 발전됩니다. 텍스트는 이러한 지적, 정서적, 사회적 경험과 참여를 매개합니다. 형식, 내용, 표현, 양식, 출처, 질에 상관없이 리터러시란 결국엔 텍스트를 다루는 일입니다. 텍스트는 세상을 거울처럼 반영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그림처럼 표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엄밀하고 폭넓게 직접 찾아 나서고 발견하여 서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텍스트가 항상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나 진실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텍스트도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든 사회적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고 싫음이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텍스트는 늘, 언제나, 예외 없이 편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텍스트를 읽고 쓰는 리터러시의 과정은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늘 주의와 경계를 요구하며, 민첩한 판단력과 명민한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다양성 시대의 리터러시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글자를 깨치고 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으로 삶을 배우고 앎을 다집니다. 그들은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 읽기와 쓰기라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수행합니다. 능동적으로 텍스트를 탐색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읽고 쓰면서 당면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첨예한 토론의 과정에 기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자발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실천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제대로 읽고 쓰는 사람들이 되어 갑니다.

◈우리는 제대로 읽고 있는가?

무엇이든 잘 배우려면 양질의 학습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합니다. 기회가 부족하면 배우기 어렵고, 배우기 어려우면 무엇을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일을 하기 어려워지면 그 일이 싫어지고, 그 일이 싫어지면 그 일을 회피하게 됩니다. 기회 결손은 학습 결손으로 이어지고, 곧 학습 동기와 학습 성취의 저하로 이어집니다. 이런 악순환의 종착점은 모두가 배움을 포기한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든 일일 각성 없이 돌아가는 상태입니다. 공동체 구성원의 자각 없이 관성적, 관행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제대로 읽고 쓰는 일을 문화적 경험으로서 배우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실질적 문맹 사회가 만들어지는 조건이자 결과를 다음의 세 가지 역설적인 리터러시 문화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질문하지 않는 사회로 우리의 시험은 질문이 없습니다. 질문이 있어도 답이 분명한 질문입니다. 세상에 정답이 단 하나 존재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답을 찾아 외우는 것입니다. 이 일은 그다지 고차원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질문은 두 가지 기능을 갖습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평가 목적의 질문이지만, 후자는 지도 목적의 질문입니다. 정답을 찾는 질문이 아닌 탐구하게 만드는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대화하지 않는 회의 사회입니다. 리터러시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읽고 쓰는 일은 제대로 말하고 듣는 일, 즉, 제대로 대화하는 문화적 참여를 통해서 심화확장됩니다. 대화가 부재한 공간에서는 리터러시의 배움을 설계하기 어렵고, 대화가 누락된 맥락에서는 제대로 된 리터러시의 경험을 쌓기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화가 결핍된 사회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리터러시가 깊고 풍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원천 차단합니다. 바꾸기 위해선 한 조직의 공동체 맥락 안에서 구성원들이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지식과 역량을 조화시켜서 함께 배우는 걸로 바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설적인 문화로 책임지지 않는 방임 사회입니다. 이건 리터러시의 공동체적 성장을 방해합니다. 잘못된 소통에 무책임하거나, 아니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읽고 쓰고 대화하는 일들에 책무성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사고합니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무례한 사회이며, 무례한 사회에서는 제대로 읽고 쓰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고사합니다. 리터러시는 증진하는 사회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리터러시에 대한 일정한 책임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입니다. 여기서 책임이란 강요된 의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그것의 종류와 범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배움에 책임지는 사회는 자신의 리터러시 행위가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지혜와 함께,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예기치 않은 결과들에 대해서 미리 조사할 수 있는 성실함과 치밀함을 구성원에게 요구합니다. 읽고 쓰는 일이 단지 한 개인의 자족적 수행이 아니라 직간접적 공공성의 함의를 내포한 공동체적 실천임을 자각하라고 늘 상기시키고 권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리터러시

디지털 환경은 열린 독자를 요청합니다. 이런 독자는 신속하지만 치밀하게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면서 읽습니다. 가치판단은 유동적이고 임시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약된 범위의 단서를 가지고 어떤 정보가 읽을 만하고 어떤 출처가 믿을 만한지, 그것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찬찬히 검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판단을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것입니다. 좋은 독자는 자신과 타인, 세상의 앎에 겸손하기 때문에 다양한 읽기 전략들을 문제 상황에 맞게 활용할 줄 아는 인지적으로 능숙한 독자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읽고 있는지 까탈스럽게 질문하면서 읽기의 목적과 상황에 비추어 메타인지적으로 읽는 출중한 독자입니다. 흔히 말하는 전략적 독자입니다. 전략적 독자는 스스로의 읽기 과정에 대한 가장 단순한 질문들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답합니다. 단순한 질문으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가 있습니다. 얘기하자면, 무엇을 읽을까?라는 질문에서 내비게이션 전략을 씁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구간들을 하나하나 공정해 나가 독자 스스로 읽기 순서를 결정합니다. 좋은 디지털 독자는 상황에 따라 변주되는 본인만의 순서로 텍스트를 골라 읽습니다. 이러한 내비게이션은 읽기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합니다. 인터넷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찾고 싶어도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런 일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메타인지적인 주의와 노력뿐입니다. 좋은 정보를 필요한 만큼 찾을 수 있으면 그만큼 좋은 내용들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됩니다.

◈인상적인 부분

지금 한국교육의 문제점이 아주 극심하게 심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교육의 폐해가 청년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연쇄적으로 출산율 저하로 인해 국가적 손실이 장난이 아닙니다. 혼자 살기도 빠듯한 대한민국 청년들이 우울증과 고립, 취업, 연애, 결혼 비율 감소 이러니 출산율 저하까지 말도 아닙니다. 전 이 원인들이 무의미한 경쟁사회가 낳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선 지 몇 년이 되었는 데 아직도 뒤쳐진 교육, 교육청이 만들어준 문제나 풀고 있고 공교육과정에 나오지도 않는 문제를 사교육을 통해 입시경쟁을 시행하니 지금 기준으로 뉴스에서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라, 다양성의 존중을 무시하는 나라 그저 같은 공장아래에 같은 제품을 뽑아내는 데 상품성이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립니다. 빨리 문제를 개선했으면 어떨까 많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의 성장은 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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